BLOG main image
도시 이야기 (22)
도시의 영화들 (15)
쑤와 레노아의 가족 영화 이야기 (2)
달콤한 나의 도시 (5)
먼북소리 (0)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흑백영화'에 해당되는 글 1건
2014. 7. 21. 16:16

언제부터였던가. 아마도 스무 살을 갓 넘긴 20대 초반부터 였던 것 같다. 가족으로부터 자립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삶을 꾸려나가는 인생을 남몰래 동경하게 된 것이. 

아마 내 경우에는 스무 살을 넘겨서도 여전히 가족의 그늘 아래 살고 있고 당분간도 그 그늘이 제공하는 최소한의 위안을 포기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부모가 넘쳐나게 갖고 있어서 자식들에게도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다면, 그 풍족한 환경은 그것대로 부러울 터다. 하지만 진정으로 내 부러움을 산 건 일찌감치 부모로부터 떨어져 자신만의 살을 개척한 이들이었다. 그 부러움은 내가 온전히 갖지 못하는 일종의 '용기'에 대한 것이었다. 



프란시스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 삶을 꾸려 나가는 젊은이 중 하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삶은 뜻대로 굴러가는 게 도무지 없다. 모든 일은 사사건건 타이밍이 어긋난다. 예컨대 룸메이트가 갑자기 방을 빼서 집세에 쪼들리게 되고, 견습단원으로 있는 무용단에서는 약속했던 자리를 줄 수 없게 됐다고 하고, 그 때문에 다음달부터 또 집세가 없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삶이 거지같이 굴러가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다가 팔자에 없이 분수에 넘치는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카드빚만 떠안게 되는 식이다. 연애운은 늘 ASKY(안생겨요. 'undatable'). 상당히 심신이 지치는 일상이다. 



그녀 삶이 순조롭지 않은 데는 무엇보다도 영 요령 없고 계획성 없는 그녀 성품 탓도 크다. 거기다가 주변 사람들 앞에서는 앓는 소리로 도움은 못받을 망정 괜한 자존심만 부리느라 감정을 축내고 (얼마 남지도 않은) 재산을 축낸다. 전형적으로 대책 없고, 눈치 없으며, 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행동하는 철부지 감정파 인간형이다. 그녀를 두고 '사랑스럽다'라고 표현하는 홍보 카피가 많았다. 난 그녀가 사랑스럽기 보다는 그녀의 태생적 덤벙댐과 눈치 없음, 대책 없음에 종종 답답 터지고 짜증이 났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러워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자립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 시작했을 무렵, 그만큼 나는 그들과 달리 그럴만한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란 것도 인식했다. 그 자립이란 단순히 나이 먹고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캥거루족만 모면하는 수준을 넘어서, 온전히 자기 스스로의 것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는다는 의미였다. 나는 언제나 대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안전장치가 없으면 불안해했고 미지, 미비의 세계로 발을 내딛기 무서워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빈틈이 나타날까봐 늘 걱정했다. 

하지만 어떤 류의 사람들은 대안을 마련해두지 않고도 우선 발을 뻗어보고 본다. 도박이고 모험일 수 있다. 하지만 설사 실패하더라도 어찌됐든 그것으로 자립은 시작한 셈이 된다. 프란시스는 과히 찌질하게 살고 있지만, 그녀의 빈틈투성이 삶은 오히려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도 한다.


- 나만의 것을 찾아나간다는 것은 삭막한 도시에서의 홀로서기 가운데 나를 보호해줄 어떤 소중한 것을 찾아나간다는 의미인 것 같다. 

- 오프닝과 클로징 삽입곡이 매우 좋았다. 

- 프란시스가 삽질하는 장면마다 터지는 웃음은 나도 갖고 있는 허술함을 향한 일종의 허탈함이었다 ㅎ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