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것, 두려워해야 할 것들의 목록은 어쩌면 오래 전 관습적으로 만들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목록에 들어있는 것들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것들이다. 이를테면 죽음 같은.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들은 두려워하기엔 너무 사소하거나 별것 아닌 일로 규정되곤 한다.
<멜랑콜리아>는 두 개의 파트로 나눠져 있고, 우울증에 관한 영화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았더랬다. 병적인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저스틴(커스틴 던스트)에게는 남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들이 너무나도 버겁게 느껴진다. 그녀는 그래서 종종 쌩뚱맞은 상황에 무너지는데, 예컨대 자신의 결혼식 같은 때다.
저스틴의 언니 클레어(샤를로뜨 갱스부르) 같은 '보통' 사람들은 통념상의 '일상적 범주' 내에서는 두려움이나 꺼림직함 등의 감정을 잘 콘트롤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통념상 그 범주를 벗어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두려움에 떤다. 저스틴은 반대다. 결혼식 하나 끝내는데도 극도의 두려움과 신경증적 불안에 휩싸이던 그녀는 오히려 지구를 향해 행성이 날아오는 '비일상적' 상황 앞에서 초연한 모습을 보인다.
애초에 두려워해야 마땅할 것들을 사회적으로 규정화하는 작업이 없었더라면, 저스틴처럼 일상을 두려워 하고 비일상은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이 기행으로 간주될 필요도 없어진다. 우울증이 '사회적' 병리 현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멜랑콜리아>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모호한 곳에서 찾아오는 우울감을 한 번이라도 맛봤을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가끔 이유 없이 느껴지는 우울감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지 못해 우왕좌왕 하는 대다수의 우리들. 우울해 해도 될 것, 안될 것들을 재고 따지다가 결국 우울감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해 만성 체증에 시달리는 우리들. 두려운 것을 마음껏 두려워하지 못한 채 자기 검열에만 사로잡혀 있는 우리를 위로하면서 동시에 조금 조롱하기도 하고, 또 측은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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