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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22. 22:55

<비긴 어게인(2014), 존 카니>은 뉴욕이라는 큰 도시에 덩그러니 쓸쓸하게 남겨진 이들을 쫓아간다. 뉴욕의 뮤지션들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2014), 조엘 코엔>과 흡사하다. 하지만 <인사이드 르윈>이 현실을 좀더 보여줬다면 <비긴 어게인>은 꿈을 보여주기를 택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 각자의 시선 차이일 수도 있고, 대중성을 위한 전략일 수도 있겠다. 





두 영화를 비교해 보자면, 뮤지션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는 실패의 캐릭터다. 한겨울 젖은 신발을 신고 동상에 걸릴 지경에 처하면서 겨우 찾아간 기획사에서도 뺀지를 먹을 정도다. 영화 주인공치고는 반전 한 번 없이, 일관성있게 안 풀린다. 한때 잘나갔던 시절이 있었고 음악성도 인정받고 있지만, 한마디로 ‘뜨지’ 않는 거다. 매일 눈 뜨면 대충 하루를 보내고, 해가 지면 또 친구 집 소파에 빌붙어 하룻밤을 나는 피로한 일상만이 반복된다. 반면에 <비긴 어게인>의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우연과 행운의 기운을 만나 바닥에서 위로 올라간다. 실력을 갖춘 르윈에게 딱 한 가지 결여됐던 게 있었다면 바로 이 우연과 운이었다. 르윈의 현실에서 우연이나 운은 행여 꿈에서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 결과 르윈의 얼굴에는 허탈하고 공허한 표정만 남았다. 그렇지만 행운을 거머쥔 그레타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와 자존감이 되돌아왔다.





<비긴 어게인>이 다양성 영화 치고 250만 관객을 찍으며 선전하고 있다. 역대 다양성 영화 중 흥행 2위를 기록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영화 속의 음악들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한 희망을 보여줘서다. 이 영화는 인생 막장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어떤 에너지 같은 것들을 긍정하고 있다. 실패하고 낙담한 이에게도 찾아와 주는 따뜻한 기운의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긍정의 태도는 음악에 버무려져서 보다 긴밀하게 전달된다.





<인사이드 르윈>은 정반대로 힘을 빼는 영화다. 보는 사람 어깨도 르윈의 것처럼 축 처지게 할만큼, 르윈은 측은하다. 분명히 음악적으로는 재능을 갖췄기에 더 안타깝다. 재주도 열정도 있지만 도통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거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면 혼자 힘만으로 더이상 어떻게 좌지우지할 수 없는 거대한 세상의 경지가 절절히 와닿는다. 그 세계 안으로 입성할 수 있는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아무리 밖에서 노래하고 소리쳐 봐야 들어줄 이가 없다는 것. 사실 나를 포함한 많은 우리들에게, 세계는 르윈이 바라보는 곳과 더 흡사하지 않을까 싶다.

그레타의 뉴욕은 실연의 와중에도 따뜻하고 희망적인 곳이었다. 배경도 따스한 색감을 내뿜는 가을의 뉴욕이다. 르윈의 뉴욕은 그보다 비루하고 허무한 곳이었다. 계절은 뼛속까지 얼어붙게 하는 쓸쓸한 겨울이다. 이들의 처지는 이렇게나 다르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보고난 뒤에는 위안을 느끼게 해준다. 노래하며 웃는 그레타와 반주자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벅차오른다. 르윈이 이따금 우스운 꼴로 세상을 조롱하는 장면을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웃음이 터져나온다. 전자는 희망과 기쁨 같은 것들에 대한 ‘동경’의 웃음이다. 반면에 후자는 ‘연민’의 웃음이다. 마치 자학 몸개그를 시연하는 코미디언을 보고 불쌍해 하면서도, 웃는게 미안하다 느끼면서도 웃음을 터뜨리는 것과 같은 류의 웃음 말이다. 좋은 것들은 언제 봐도 좋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 손 안에 없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예쁘고 아름다운 것, 긍정적인 기운을 내뿜는 이야기들을 마주하면 더 감격하고, 부러워하고, 원하게 된다. 하지만 나의 것에 더 가깝다고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르윈에 투영돼 있던 연민과 공허함이었다. 그래서 르윈을 보면서는 미안한 위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