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도시 이야기 (22)
도시의 영화들 (15)
쑤와 레노아의 가족 영화 이야기 (2)
달콤한 나의 도시 (5)
먼북소리 (0)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쑤와 레노아의 가족 영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2건
2015. 1. 4. 23:52

‘알코올의존증인 아들, 남편, 아버지가 있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가정의 불화, 끔찍한 유년기,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것들 아닐까. 이 영화는 그런 고정관념을 가볍게 뛰어 넘어 한 차원 다른 이야기를 한다. 엉뚱하고 심플하지만 따뜻했던 <술이 깨면 집에 가자(Wandering Home, 2010), 히가시 요이치>. 심각한 알코올의존증인 츠카하라 야스유키(아사노 타다노부)가 짧고 굵게 내뱉는 한 마디 말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제 술 끊고 집에 가자’.





영화는 생각보다 독특했다. 특히 츠카하라의 가족들은 처음부터 심상치 않다. 도입부에서 츠카하라의 어머니는 술을 마시다가 장렬하게 피를 토하며 쓰러진 그에게 ‘죽을 거면 가족 없는 데 가서 죽으라’고 말한다. 헌데 모자 사이에서 이 말은 마치 ‘빨래 정돈 네가 스스로 개라’ 정도의 가벼운 잔소리처럼 소화된다. 아직 영화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헷갈리기 시작했다. 모자의 사이는 원만해 보이고, 대사에 악의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대체 이 가족은 뭘까.

그 직후 츠카하라의 가족이 등장한다. 아내인 유키(나가사쿠 히로미)와 어린 아들, 딸이 병문안을 온 것.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이번에야말로 골로 갈 뻔 했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아빠의 소변주머니를 가지고 해맑게 장난을 친다. 아내는 츠카하라에게 진심 어린 키스를 해주고 병원을 떠난다. 도대체 이 가족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일지, 남은 영화가 심히 궁금해졌다.





게다가 감독은 알코올의존증으로 엉망진창인 츠카하라를 마냥 ‘나쁜 놈’으로 그려 놓지 않았다. 동시에 특별히 절망적이거나 막막한 인생으로 그려 놓지도 않았다. 그가 정신병원 알코올병동에 입원하기까지 가족들의 서포트, 다른 환자들과 어울리는 소소한 입원 생활 등은 츠카하라가 그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임을 알게 해준다. 츠카하라를 포함해 알코올의존증으로 입원 중인 영화 속 환자들 모두 똑같다. 이들은 결코 문제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희화화되지도 않는다. 비참함이나 우울함의 매개체로 소비되지도 않는다. 당췌 코믹 영화인지 가족 휴먼드라마인지 종잡을 수는 없지만, 이 모든 요소들이 영화를 빽빽하게 흥미롭게 만든다.



그 중에서도 아내 유키의 감정선은 러닝타임 내내 무척 복잡미묘하다. 하지만 영화는 딱히 이렇다 할 부연 설명 없이 절제된 묘사로만 그녀의 심경을 어림짐작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술에 취해 이따금 폭력까지 휘두르던 전남편(그렇다, 이들은 심지어 이혼한 상태다) 츠카하라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헌신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를 계속 봐 나가며, 나는 천천히 조금씩 유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장면에서 그녀는 의사에게 ‘슬픔과 기쁨을 구분하지 못하게 됐다’며 담담히 속내를 고백한다. 평소엔 늘 속마음이 드러나지 않게끔 쿨한 유머로 너스레를 떤다. 영화 속 시간보다 더 앞선 과거의 결혼 생활이 어땠을지 어렴풋이 짐작되는 대목들이다. 아마도 그녀는 술에 취한 남편 옆에서 내내 외로웠을 것이다. 그녀는 둘의 아이들을 위해 강해졌을 것이며, 이혼을 결정하며 츠카하라를 포기했을 것이다. 전남편에 대한 기대를 다 접고, 이제 더이상 실망하고 미워할 일도 없어졌을 것이다. 현실의 문제들을 걷어내자, 유키에게 츠카하라는 그녀 삶의 ‘빈 구멍’이자 그리움으로 오롯이 남았다. 츠카하라에게 유키와 아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런 유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터뜨리는 장면이 있다. 츠카하라의 망가진 건강이 나날이 악화되면서 그를 돌보는 일도 힘들어졌을 때다. 그녀는 결국 아무도 보지 않는 부엌에서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 만다. 자신의 삶에서 츠카하라를 비워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시작되는 그와의 시간은 여러 모로 버겁고 혼란스러울 법 하다. 그런 엄마를 몰래 바라보는 두 아이들의 눈망울엔 맑은 슬픔이 어린다.




하지만 마지막 온 가족의 바다 여행 순간, 츠카하라와 유키는 둘 다 ‘집’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찾은 바다, 츠카하라는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유키의 눈에 진짜 츠카하라가 있는 쪽과 정반대편 방향에 나타난 그의 영혼(?)이 보인다. 그의 영혼(감독은 은유 따위 버리고 말 그대로 ‘영혼’을 등장시킨다)일지 유키의 환시일지 모를 또 다른 츠카하라는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뿅’ 사라진다.

유키의 눈에 츠카하라의 영혼이 떠나가는 모습이 보인 건, 아마 그동안 츠카하라에게 귀신 처럼 씌여 있었던 지긋지긋한 무언가가 마침내 해소됐다고 느꼈기 때문 아닐까. 츠카하라가 매일 꾸던 꿈처럼 그를 초조하게 만들던 그 무엇 말이다.


알코올의존증이나 우울증 같이 드러나는 문제를 안고 있지는 않더라도, 우리 모두 삶의 ‘빈 구멍’을 하나 둘쯤 갖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깨진 독에 누군가는 돈을 붓고 누군가는 사랑을 붓고 누군가는 술을 부을 뿐. 영화는 술이 깨면 돌아가고픈 곳을 ‘집’으로 표현했지만, 결국 삶에 필요한 가장 최소한도의 따뜻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입원 중인 츠카하라는 매일 맛있는 카레가 저녁 메뉴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일희일비한다. 때때로 우리에겐 너무나 좋아하는 카레의 맛있는 냄새가 가장 충만한 행복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술이 깨면 집에 가자>고 경쾌하게 제안하는 이 영화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간에, 누구나  자신의 깨진 빈 틈도 인정하고 보듬어 줄 따스함을 갖고 있을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순수하고 확고하게 희망적으로. 





- 영화는 기본적으로 무척 직관적이다. 예컨대 술에 잔뜩 취한 츠카하라의 상태를 표현할 때, 그의 눈 앞에 환시가 보이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아예 실제로 조악한 분장을 한 츠카하라를 '환시'로서 등장시키는 식이다.

- 히가시 요이치 감독은 <그림 속 나의 마을>로 1995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감독이다.

2014. 8. 15. 02:04


가족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생기면 늘 집어드는 영화 두 편, <레이첼 결혼하다(2008), 조나단 드미>와 <걸어도 걸어도(2008),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이 때 나의 갈증이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고 싶다’라기 보다는 좀 더 복잡 미묘한 감정이고, 일반적으로 ‘가족 영화’라는 장르가 환기하는 가족애 따위를 향한 갈증도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예컨대 내가족이 미울 때, 내 가족을 못 견딜 것 같을 때 혹은 내 가족을 향한 나의 이기심을 확인(?)하고 싶을 때 이 두 영화를 꺼내든다.



# <레이첼 결혼하다>는 문제아 동생 킴(앤 해서웨이)이 언니 레이첼(로즈마리 드윗)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재활원에서 나오는 날부터 시작된다. 킴은 모처럼 만난 가족들과 반갑게 정을 나누며 언니의 결혼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다. 서로를 극진히 아끼는 네 식구, 겉으로 보기에는 사랑과 보살핌만이 존재하는 화목한 가족이지만 킴은 계속 왠지 모르게 가족들이 불편하다. 가족들은 그런 킴을 보며 또 안타까워 하지만, 서로 사랑하면서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새 결혼 날짜는 다가온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내 안에도 있던 비밀한 감정을 들킨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바로 ‘내 가족이 밉다’라는 감정을. 이상하게 이따금 가족이 ‘견딜 수 없이 밉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주말 막장 드라마처럼 그들이 말 그대로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드라마처럼 극적인 갈등이나 신파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잔잔한 호수 표면 위에 대수롭지 않은 돌멩이 하나가 파장을 일으키듯, 오히려 가족 안에선 늘 말도 안되게 사소한 것 가지고 상처 입고 상처 입히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난 뜨악해 했다. 가족이란 ‘좋다, 밉다’라는 가치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숭고한 무언가가 아닌가 하는 자기 검열적인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사람이란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기적인 존재다. 이 근본적인 욕망이 가장 극적으로 도전 받는 장소가 바로 가족 안일 것이다. '혈연'이라는 존재에는 으레껏 대가 없는 사랑과 배려가 전제 돼있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에 대해서는 이 같은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지만, 가족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이것이 문화적으로 학습된 것인지 인간의 본능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없는 ‘가족애’라는 것의 실체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레이첼은 자신의 결혼식 하루만큼은 자기가 주인공이고 싶다는 소박한 이기심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결혼식인데도 사람들의 관심과 신경은 동생 킴에게만 몰려 있는 상황 가운데, 레이첼은 동생을 미워하기에 이르는 자신의 마음을 계속 다잡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반면에 킴은 자신이 ‘관심사병’이 돼서 온 가족들의 친절에 시달리고 있다는 본인 위주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9개월만에 만난 이 두 자매의 충돌은 예상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충돌의 폭발력은 상당히 컸다. 



# <걸어도 걸어도> 역시 같은 의미에서 종종 ‘섬찟’한 느낌을 자아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이 어땠는지야 알 도리 없지만, 그는 네 식구에 불과한 한 가족 안에도 벽장 속을 다 채우고 남을 만큼 수많은 비밀한 감정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 싶다. 그리고 언젠가 그의 인터뷰를 봤다. 이 영화를 만들기 얼마 전,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이 영화에서도 가족이란 존재는 ‘가족이라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존재다.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이라는 상투적인 수식어가 무색하게도, 내가 가장 많은 상처를 입히는 사람은 고작 몇명 되지 않는 내 가족들이다. 료타 역시 되도록이면 고향의 부모님 집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보통 연례 행사로 얼굴만 비치면 그의 할 일은 다 한 셈이 되곤 하는데, 으레 한 번 있는 그 방문에서도 상처의 파편들은 불쑥불쑥 날아든다. 예컨대 전남편과 사별하고 료타와 결혼한 새 며느리를 두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중고’라 칭하는 어머니, 본인이 듣기에 거북한 이야기가 펼쳐지면 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엄마 속도 모르고 친정에 얹혀 살 궁리만 하는 딸. 이들 사이에서 상처의 파편들은 기척도 없이 집 안을 유영한다. 





특히 어머니(키키 키린)는 이 가족 안에 쌓인 것들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이다. 어머니는 늘 인자하고 헌신적으로 나머지 식구들을 위해 밥을 짓고 간식을 만들지만,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는 수십년 간 쌓여온 고통이 있다. 큰아들의 죽음, 젊은 시절 남편의 외도...세월이 흐른 지금 너무도 평온하고 평범해 보이는 한 가족의 ‘어머니’는 오늘의 이 표정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오랜 기간 그 고통들을 삼키고 소화해 냈을까. 정적인 카메라에 담긴 집 안의 풍경에서는 때때로 탁하고 무거운 공기의 질감까지 전해진다. 



# 두 영화의 가족들은 모두 서로 간의 오해나 원망 또는 해묵은 갈등을 풀고 ‘보다 더 화목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전혀’다. 그건 현실이 아닐 것이다. 이들 가족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냉탕과 온탕을 오고갈 것이다. 가족이란 그런 거니까. 널 미워하는 나 자신을 자책하게 만드는 동생으로 인해(레이첼), 자식을 원망하는 나 자신을 벌 주고 싶게 만드는 딸로 인해(레이첼과 킴의 엄마), 레이첼의 결혼식은 끝나지 않고 계속될 거다. 료타 엄마가 남편의 외도를 마음에 수도 없이 아로 새기듯 틀어두던 노래 ‘걸어도 걸어도’ 또한 끝나지 않고 울려 퍼질 거다. 


prev"" #1 next